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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전문가의 목소리> 학교예술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발행일
2019.10.21
필자
곽덕주
소속
서울대학교 교수

 


  학교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2006년 유네스코 세계예술교육선언 이후 모두를 위한 예술교육(arts education for all)이라는 보편교육의 슬로건 하에 예술교육 및 학교예술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며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여기서 얘기되는 보편적 예술교육의 취지는 인권 보장이라는 정치적 차원에서의 논의가 깔려있다. 교육과 문화적 참여에의 균등한 기회 보장 및 모든 이들의 개인적 능력의 개발을 위한 질 높은 교육이라는 의미에서 그 기회의 내실화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이러한 전 세계적인 추세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학교예술교육 담론이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맥락에서 그리고 ‘교육의’ 맥락에서 다시 재정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맥락에서, 그리고 교육의 맥락에서 학교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이것에 대한 답을 예술이 지니는 교육적 힘, 특히 인문 교육적 힘에 초점을 두고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예술교육은 지식교육에 접근하는 ‘기초’로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다. (근대적) 학교의 교과에 대한 기존의 우리 생각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다. 지식교과가 ‘중심’이고 예술교과는 ‘주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제4차 혁명시대에 요구되는 지식은 근대 지식의 양태인 이론적이거나 인식적 형태의 지식보다는 실천적이고 자기 구성적이며 체험적인 지식이다. 최근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개혁에서 얘기되는 ‘핵심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라는 것도 학교 지식의 성격에 대한 이러한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특정 지식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술교육은 지식을 아이들이 습득하고 적응해야 할 딱딱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정서적으로 연결시키는 능력과 태도를 준비시키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을 통한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 대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정서적인 반응을 자극하거나 이끌어내며 이러한 감수성을 연습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 앞서 프랑스 정부는 학교예술교육을 지식교육에 접근하는 ‘기초’로서 말하며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둘째, 예술교육은 ‘세상을 살아내는 힘’에 필요한 아이들의 정서적 강인성과 인간적 성숙함을 기르는 데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입시 위주의 압박적이고 위계적인 교육에 익숙한 우리나라 아이들은 감각과 몸으로 직접 느끼며 수용하는 정보에 기반한 자신의 판단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루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감각적 이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각적 정보에 기초하여 그 상황을 판단하기보다는 권위를 가진 다른 사람이나 무리의 말을 따름으로써 자신에게 해가 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술교육은 일차적으로 구체적 대상이나 사물에 주목하여 그 세부 사항의 고유성을 직접 보고 듣고 지각하며 체험하는 감각적 일깨움에서 출발한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지각하고 느끼는 습관을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것에 기반하여 자신과 연결되는 연습,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색하는 방법을 열어줌으로써 아이들의 정서를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들어 준다. 사실 ‘인간적 성숙’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의 내적 소통이다. 공부에만 뛰어난 아이들에게 보통 발견되는 것은 인간적 편협함이나 미숙함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자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이거나 강렬한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또 표현해 보도록 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이들의 인간적 성숙을 이끈다. 이러한 정서적 강인함과 인간적 성숙은 경쟁이 심해지고 점차 파편화, 개인화되어가는 디지털 미래 사회에서 아마 외롭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미래 세대에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내면적 힘이 된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이러한 힘을 준비시키고 길러주는 대체 불가능한 교육의 매체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에 앞서 일본 정부는 학교예술교육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한다.)

 

  셋째, 학교예술교육은 우리나라 공교육의 학교 문화를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으로서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한 경험이 요청하는 사유나 태도는 한 가지 올바른 답을 지향하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예술교육은 한 가지 예술작품이나 대상에 대해 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느낌과 견해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또 그것을 우리 눈앞에서 목격하게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내면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적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은 타자의 세계에 대해 공감하고 또 이것과 상호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세계와 교제하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실천의 양식을 직접 예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에 대한 경험을 매개로 하여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타 교과의 교수-학습 방법으로도 응용되어 확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 간의 상호 작용의 문화에도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학교예술교육은 우리나라 공교육 문화의 변화에도 장기적으로는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우리에 앞서, 뉴욕 링컨센터의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학교교육에 들어감으로써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예술교육의 현황, 그리고 방향은?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 학교예술교육의 현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부터 문체부의 예술강사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교육부가 지원하는 여러 학교예술교육 정책들이 입안되고 시도되어 왔다. 2018년에는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에서 <학교예술교육 활성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같이, 좀 더 장기적인 안목과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학교예술교육을 지원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하였다. 여기에서는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 한 가지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정규교육과정 중심의 예술교육을 먼저 내실화하기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지역의 자원에 기반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학교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학교예술교육의 정책에 관한 직접적인 논의보다는 학교예술교육을 위한 다양한 실천적 노력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 가지 문화적 요인을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편견, 특히 교육 관련 담당자들의 편견이다. 우리나라는 근대 예술 및 예술 교육에 대한 짧은 역사 때문에 예술의 교육적 가치나 기능에 대한 오해가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나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편견은 학교예술교육의 접근에 대한 다음 두 가지 고착적인 생각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예술교육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잘 그리거나’ ‘잘 연주하는 것’과 같이 기능이나 기량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예술 공동체는 소수의 재능 있는 예술 ‘창작자’와 그들이 창작한 작품을 감상하도록 되어 있는 ‘관객’ 혹은 ‘청중’, 이렇게 두 부류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전문예술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은 미래의 관객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일반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은 이 두 가지 목적과 접근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받아온 미술과 음악 교육이 그랬고, 모르긴 해도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교육이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학교예술교육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예술과 예술교육의 개념은 모두 극복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대 예술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누구나가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또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때 ‘예술’과 ‘예술가’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대 예술에서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나 사물을 만나고 교제하는 특별한 경험의 양식, 즉 하나의 ‘문화’로 이해된다. 그리하여 음악, 미술, 무용 등 각 예술 장르들은 이러한 세계 교제의 방식으로서 예술이라는 큰 우산 아래 모두 포섭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무용 등은 각 장르 안에 갇혀 자신만의 자율성을 갖기보다는 하나의 경험의 양식으로서, 음악은 ‘소리’, 미술은 ‘시각’, 무용은 ‘몸’이라는 우리 자신의 감각이나 정서적 경험이나 의미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만약 예술이 이렇게 이해된다면, 예술교육도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예술교육은 이제 아이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잘’ 그리거나 ‘잘’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나 사물을 ‘더 많이’, ‘더 섬세하게’,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더 다양한 시선으로’ 듣고, 보고, 지각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교육적 접근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일차적으로 뭔가를 잘 그리거나 만드는 사람이기보다는 오히려 뭔가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고, 잘 지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의미에서 누구나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고, 학교예술교육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예술가가 누구나 될 수 있도록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학교예술교육의 교육적 접근과 관련하여 새로운 지평을 연다. 먼저 예술이 사물과 교제하는 하나의 고유한 경험의 양식이라면, 이제 내 눈 앞의 사물은 그것에 대한 나의 시각, 청각, 지각 등 분리된 감각으로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감각으로 체험되고 또 그 체험에 기초하여 판단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교육은 이제 특정 장르 속에 갇히기보다는 여러 예술 장르를 가로지르거나 포괄하는 방식으로, 즉 공감각적인 예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의 통합적인 예술교육적 접근이 구안될 필요가 있다. 또 누구나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면, 창작과 감상 교육은 동시에 제공되더라도, 창작이나 감상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결과물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 활동 속에서 겪게 될 예술경험의 과정적 측면에서의 생동성과 구체성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창작에서든 감상에서든, 예술의 언어를 깊이 체험하고 그것이 표현하는 것을 깊이 해석하고 공감하도록 하는 미적인 체험과 감수성을 일깨우고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두는 예술교육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예술교육의 성공과제는 무엇인가?

  이렇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학교예술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교사들이 자신의 교육적 역할에 대해 새롭게 동기화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이들은 대부분 근대 예술의 체제 하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그간 학교 내에서 주변 교과로 취급받아온 예술교과 담당 교사로서 많이 위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교사 양성과정 프로그램에 대한 체계적 점검도 필요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 하의 예술교육적 실천을 위해서는 학교 내 예술교사들뿐만 아니라 학교 밖 자원으로서 문체부에서 지원하는 예술강사들의 활용 및 이들과의 협업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활용과 협업은 해당 학교의 학교장이나 타교과 교원들의 지지와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학교장과 비예술교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교육적 이해를 제고하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책적 과제가 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 예술교사들이 학교 밖 지역 예술강사들을 활용하거나 이들과 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형태의 제도적 장치 및 지원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교육(성)’에 대한 전문성을 학교 예술교사들이 갖는다면, 예술가로 훈련받은, 학교 밖으로부터의 예술강사들은 나름 ‘예술(성)’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교사들은 수업이나 수업 외 활동에서 이들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술교사들이 자신의 예술전공 교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나 기능에 초점을 두고 교육을 한다면, 예술 강사들은 아이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미적 체험을 위한 교육에서 전문성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미적 체험을 언어화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이 미적 체험이 아이들의 삶에 의미로 이어지고 또 인간적 성숙 및 개인적 문화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러한 분업과 협업은 서로의 전문성에 대한 인정을 통해서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______ⓔ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곽덕주 사진.jpg

곽덕주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재직 중이다. 관심분야는 교사교육철학, 예술교육철학, 동서양 비교교육철학 등이며, 관련 저서로는 『미적체험과 예술교육』(2013), 『유럽에서 만난 예술교육』(2015) 등이 있다.

필자
곽덕주
소속
서울대학교 교수
발행일
201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