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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 6Cs 인재 양성에 승부 걸라

발행일
2020.01.20
필자
양영유
소속
중앙일보 교육전문기자


대한민국의 역사는 20년 단위로 변곡점을 맞았다. 1960~1979년 산업화와 근대화, 1980~1999년 민주화와 외환위기, 2000~2019년 글로벌화와 보수·진보 정권 바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맞은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새로운 20년의 대한민국 명운을 가름할 중요한 출발점임이 분명하다. 남북관계와 외교, 글로벌 경제와 정치, 중동 문제 등 다양한 변수가 요동치고 있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문명사적 4차 산업혁명의 도래다. 필자는 3년 전 노벨화학상 수상자(2001)인 일본 나고야대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과거 산업혁명에 비해 4차 산업혁명은 변화속도가 10배 빠르고, 규모는 300배 크고, 임팩트는 3000배 강하다. 4차 산업혁명에 뒤지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그러면서 노요리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중심으로 재편될 글로벌 경제와 글로벌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인데 그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의 힘이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대로 세계는 지금 교육 전쟁중이다. 아날로그형 교육 시스템을 창의·융합형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베스트(Best)보다 온리(only)가 글로벌 패권을 잡고 새로운 부국(富國)을 창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낡은 입시 논쟁에만 매몰돼 교육개혁이 게걸음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입시가 출렁이며 정치 입시구태가 재현된 게 바로 지난해였다. 고교졸업생은 대학 정원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또 다른 변곡점의 역사가 시작되는 2020, 그리고 20년 후인 2040년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30만 명 중 여성이 15만 명이고, 이들이 모두 결혼해 자녀를 두 명씩 나아야 30만 명이 유지된다. 그런 절박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경자년이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교육, 어제보다 나은 교육정책을 수립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는 10가지 정책을 각별히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①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 ③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④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 ⑤고교학점제 추진 학교공간 혁신 ⑥학교공간 혁신 ⑦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⑧사학혁신 방안 ⑨대학·전문대학 혁신 지원 방안 ⑩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이다. 그리고 미래교육체제에 대한 선제적인 준비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는 꼭 발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I) 시대를 앞서갈 미래 교육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세계는 6Cs 인재 양성, 우리는 입시에 파묻혀 게걸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핵심 역량은 6가지라고 한다. , 소통(communication), 협업(collaboration),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 인성(character), 시민의식(citizenship) 6Cs(Fullan & Langworthy, 2014). 이런 6가지 능력을 키우려면 현행 교육 시스템으론 한계가 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시대로 일컬어지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선진국들이 교육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고 있는 까닭이다.

 

링컨 대통령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라고말했다. 6Cs형 인재 양성도 그런 맥락에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국가전략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어떨까. 교육부가 밝힌 고교체계 개편과 대학입시 변경,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청년(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 등이 과연 6Cs에 부합하는 방안일까. 더욱이 올해는 총선이 있어 정시확대와 자사고, 특목고, 혁신학교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교육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시기인데 말이다.

 

  당연히 고교와 대학 입시는 중요하다. 입시 나침반에 따라 초··고 교육과정이 출렁이고, 심지어 유치원 교육까지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소수의 지위재(positional goods)를 놓고 죽고 살기 경쟁을 하는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자사고와 외고 사태의 본질도 거기에 있다. 평등 교육과 수월성 교육의 충돌이다. 학부모들은 더 나은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를 원한다. 기본적인 학교 선택권 욕구이다. 그래야 사회적 지위 경쟁(positional competition)에서 유리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조국 사태를 빌미로 정부는 학부모와 학생 선택권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군사 작전하듯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밀어붙이겠단다. 전국의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는 신년 벽두부터 다시 반발하며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올해 내내 고교체계 개편 문제는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아무런 의견수렴 없이 고교서열화 해소를 명분으로 강제 폐지에 나섰다.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한다고 일반고가 살아날까. 일반고 사이에 또다시 서열화가 생기고, 평준화 교육으로 학생들의 학업 몰입도는 더 떨어져 6Cs 교육이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외고·자사고 폐지는 헌법정신도 거스른다. 헌법 제31조 제6항은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사고와 외고 문제도 시행령 차원의 변경이 아닌 국회가 법률로 정하라는 뜻 아닌가. 이런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대통령에 충성 경쟁하듯 자사고와 외고 폐지에 앞장서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평균주의에 함몰돼 평둔화(平鈍化) 교육 깃발을 꽂는 2020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학 입시는 더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며 혼란의 연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론 고3부터 초등학생 4학년까지 매년 입시가 바뀌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정시 비율까지 언급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는가.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2020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지원자는 548,734명으로 이 가운데 재학생은 71.8%(394,024), N수생은 25.9%(142,271)이었다. 3 재학생의 경우 대입 정원보다 적은 현상이 이미 나타났다.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데 여전히 입시타령이고 입시 통제에 빠져 있다. 교육부는 국민세금으로 돈줄을 쥐고 입시와 학사 간섭을 한다. 예컨대 스카이(SKY) 대학을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으로 뽑아 세금을 나눠주는 걸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한민국 입시 블랙홀인 스카이대학이 과연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게다가 조국사태로 드러난 이들 대학의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 정권 눈치 보기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입시 자율과 학사 운영 자율, 그리고 등록금 자율을 외치기 전에 대학의 책무성 제고가 시급하다. 나는 자율을 주되 엄격한 무관용주의(Zero Tolerance)’를 적용해 무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시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짜 서류로 대학과 대학원에 들어가고, 엉터리 장학금을 받아도 대학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무슨 자율을, 또 무슨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가. 올해 대학가에 불어 닥칠 공정과 정의, 그리고 자율과의 충돌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게 답답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과연 설치될 수 있을까

유은혜 장관은 미래교육체제에 대한 선제적인 준비를 위해 올해 국가교육위원회를 꼭 발족해야 한다.”“2020년 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법이 처리되도록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여부는 사실 총선 결과에 따라 그 향배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정치와 이념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개혁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음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바다. 따라서 기존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수준을 넘어 중장기적인 교육비전을 세우고 4차 산업혁명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교육개혁의 구심점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교육회의 운영 성과에 견주어보면 과연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된들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1712월 출범한 국가교육회의의 경우 연간 3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중립적이어야 할 조직은 진보 인사들로 채워졌고, 활동 실적 또한 유명무실화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 마련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자화자찬하며 백서(白書)를 발간하며 존재의 이유를 알리려 를 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된다면 정치적 중립성과 이념의 중립성이 생명이 될 것이다. 올 한 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여부가 교육계에 메가톤급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올해 또 다른 이슈는 고교생들의 선거권이다. 최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내려가면서, 고교 3년생 일부가 올해 4월 총선부터 선거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현장에선 고교 교실이 진영 대결의 정치적 선거 장()으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인헌고 사태에서 보듯 자칫 편향교육이나 특정 이념 교육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총의 주장대로 국회가 공직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 등을 개정해 학교와 교실 내 선거 및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이 역시 오롯이 어른들의 몫이다.

 

   이상과 현장이 따로 놀면 교육 미래는 없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에는 현재 4년제 대학의 절반이 없어지고, 마이크로 칼리지(microcollege)가 급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4차 산업혁명 자동화로 현재의 직업 중 최소 14%가 사라질 위험에 처하고 32%의 직업은 급진적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OECD Employment Outlook 2019). 이런 전망은 곧 인재 양성 방식, 즉 교육 패러다임의 변혁이 시급함을 의미한다. ··고 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학습방법과 평가방법의 대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그동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2015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만 봐도 그렇다. 대한민국 교육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일등공신으로 평가돼 세계 100여 개 참가 국가의 찬사를 받았다. 단기간의 초중등 의무교육, 공교육 재정 확대,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 등의 성과가 소개됐다. 구미 선진국이 300여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를 60년 만에 압축 성공한 밑바탕에는 한국의 교육이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키스 한센 세계은행 부총재는 한국의 성취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여서 기적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다른 나라가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차례 가까이 칭찬했던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국제적인 찬사와 평가가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

 

   과연 그런 찬사가 계속 유효할까. 그 해답은 결국 교육 대혁신에 달려 있다고 본다. 평준화와 수월성 교육의 조화, 디지털 교육 강화, 컨버전스 커리큘럼, 교육과정·수업·평가의 혁신, 교사 재교육, 에듀테크 활용, 대입 안정화와 자율성, 대학 재정 건전성, 그리고 대학의 책무성 강화 등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크버그 같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배출하려면 경직된 교육시스템으론 불가능하다.

 

   2020년은 새로운 10, 20년을 향해 달리는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교육계의 숱한 난제의 실타래를 부모마음 정책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말로만 모든 아이는 내 아이다라고 외치지 말고 교사·공무원·장관·대통령이 모두 한마음, 즉 부모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면 아이들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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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기자는 현재 중앙SUNDAY 기자로 활동하면서 교육분야를 전문으로 취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교육데스크와 사회에디터,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관심분야는 글로벌 고등교육과 4차 산업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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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