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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개정안, 그 현장 속에서

발행일
2019.12.18
필자
정태환
소속
전북 만경여자고등학교 교사

 

  학교폭력 개정안, 그 현장 속에서

 

  들어가는 말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된 지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실제 시행 이후, 더욱 강력하게 제도화되어 교육현장에서 체감한 것은 10년 정도 된 듯하다.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교육하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교육현장에서 느낀 여러 가지의 생각을 부족하지만 두서없이 정리해보고자 한다.


  학생은 학교폭력에 맞서고, 교사는 학교폭력 업무에 맞서다.

  2012년이었다. 평범한 교사인 내게 먼 산 보듯 하였던 ‘교내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처리업무’가 맡겨졌다. 그리고 그 업무들은 학생부(현 인성인권부)의 교내생활지도계와 학생부장을 거쳐 2019년 8월까지 숙명처럼 주어졌다. 8년 8개월간의 업무를 통해 내가 돌아본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 학생들은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애들은 다 맞고 싸우면서 크는 거지’라는 말에 세뇌되어 있던 모습이었다. 서로 싸움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놀리거나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도 사회의 축소판처럼 교실안의 룰(Rule)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교육 현장에서 약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학생들은 학교폭력에 맞섰다. 나는 이것을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학교에서의 여타 예방교육이 굉장히 형식적이고 번거롭고 사무적인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고 나 또한 동감하지만, 다른 교육은 논외로 하더라도 학교폭력만큼은 아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우리 약자들의 목소리를 커지게 하였다. 점점 절차를 깨닫게 되고 심각성을 체감하게 되고 그 처리와 결과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저학년일수록(고등학교 교사의 관점에서 새로운 1학년이 들어올수록) 그 감정의 농도는 점점 짙어져만 갔다. 우리의 노력이 결국엔 학생들을 구하게 된 것이다. 굳이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교육현장에서는 그렇게 느꼈다.


  이번에는 교사에게 눈을 돌리자. 교사는? 그렇다. 교사는 산더미 같은 업무와 맞서고 있었다. 학교폭력 업무는 점차 증가하였다. 양식은 세분화되었고 절차는 복잡해졌다. 보통 이상의 많은 공부를 해야만 이 업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교육지원청에서 연수를 하고 수많은 공문을 내려 보내도 단시간에 업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수많은 상담들이 이루어진다. 가해자(추정)·피해자(추정)·목격자·담임교사·상담교사·보건교사 등,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간의 상의와 상담이 끝나고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상정을 위한 형식적(상정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회의를 거친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학교장 결재와 보고가 필수이다. 그리고 자치위원회로 가게 되어 학부모위원·외부위원·교원위원 등이 시나리오를 읽어나가며, 우리가 흔히 보는 재판처럼 ‘자치위원의 기피·회피·제척’을 거친다. 이후 다양한 절차를 거치는데 마치 형사재판과도 비슷하다. 결정과정은 더욱 복잡해져, 자치위원들이 가해학생의 선도 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을 참고하여 항목별로 의견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5가지의 기준(기본 판단 요소)을 가지고 점수로 산정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협의를 통해 결정을 해야 하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로 경감처리를 할 수 있다. 그 후는 특별교육 병과조치·조치요청서·결과통보서 등의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며, 가해학생과 학부모에게 특별교육을 의뢰할 기관을 섭외하고 해당 기관에서 이수를 잘하였는지, 불출석시 언제까지 독려를 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과 의문을 가지고 학교폭력 업무 절차는 마무리로 흐른다. 그리고 결정통보서, 조치이행서 등의 서류 등을 마련하고도 끝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후에 피·가해 학생 측에서 재심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통해서 모든 절차의 타당성과 적정성이 고려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학교에서 진행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심의가 뒤집히는 경우도 아주 허다하다. 만약 재심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학교폭력은 생활기록부로 남아 몇 년 뒤 담당자가 생활기록부 삭제를 위해 성적관리위원회에 의뢰하는 등의 업무도 챙겨야 한다. 이와 같은 절차는 줄이고 줄여 몇 가지만 나열한 것이다. 아마도 학교폭력업무 담당자가 아닌 경우라면 이글을 읽고 입이 떡 벌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릴 텐데, 이에 더해 수많은 민원과 내·외부 사람들과의 조율 속에서 이 업무를 해오고 있는 담당자는 어떨까?


  학교폭력 업무 그 본질에 대해

  나는 학교폭력 업무를 지역에서 가장 오래한 축에 속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를 공식·비공식적으로 상담해주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 공식적으로는 지역의 교육지원청을 통해 초·중·고를 다니면서 학교폭력 업무의 미진한 부분을 컨설팅해주는 것이었다. 갈 때마다 늘 혼돈스러웠다. 단지 몇 년을 조금 더 했고 법학을 전공하여 남들보다 법에 조금 더 흥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컨설팅하고 지도할 수 있을까? 내가 주제넘게 선생님들의 노고를 무시한 채 지적질을 하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등과 같은 고민을 교문 앞에서 수차례 되뇌었다. 다른 학교들의 문을 열면 흥미롭게도 열이면 열,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사는 업무를 맡은 지는 불과 1~2년이고 업무에 대해서 겨우 파악을 했으며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고, 간혹 학교폭력이 조금 잦은 학교의 경우는 어떻게 하면 초기진화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들은 처음엔 컨설팅이 아니라 ‘노고에 대한 공감’으로 시작을 한다. ‘얼마나 힘드셨는지,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구나’라고. 그리고 서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 매의 눈에 걸려드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었다. 컨설턴트 총책을 맡았던 나는 ‘내부기안의 절차는 지켰는지, 학부모위원 선출시 학부모총회에서 선출하였는지, 가해학생 세부기준을 정할 때 점수를 평균내지는 않았는지, 기피·회피·제척 사유는 잘 설명하였는지, 생기부 졸업 시 삭제 관련 대장은 만들었는지’ 등의 핵심 내용을 몇 가지만 점검해도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은 지적사항이 줄을 이었고, 오늘의 할 일은 끝낸 셈이 되었다. 한마디로 컨설팅은 서류점검이다.


  공식적으로는 컨설팅 활동을 했다면, 비공식적으로는 다양한 루트로 들어오는 학교폭력 상담이 있었다.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했거나 하는 일부 부모님들께서 친인척 또는 인맥을 통해 교사들에게 상담을 했고, 일반교사는 상담하기 어려운 분야라 꽤나 많이 재상담이 들어오곤 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님과 통화도 하고 배후 상담을 해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우리 아이 어떻게 하면 살리고, 저 아이 어떻게 하면 곤경에 빠트릴 수 있을까’였다는 게 슬픈 일이었다. 사실 방법은 간단했다. ‘법률적이고 절차적’으로 하는 것이다. 민·형사적으로 문제 삼고, 그걸 조건으로 학교폭력에서 유리하게 이끄는 것인데, 교사는 ‘학생 성장의 발판’이라고 여기는 내가 일개 행정·법률가 블로그에서나 볼 말들을 해야 한다는 데에 상당한 자괴감을 느끼고 상담을 조속히 마무리하곤 했었다.

         

  사실, 사안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절차와 법률을 통해 누굴 어떻게 하느냐, 너는 어떻게 했느냐가 아닌, ‘피·가해 학생의 조사와 상담 속에서 인권침해나 놓치고 있었던 부분은 없었는지, 학교폭력은 어떻게 하면 뿌리를 제거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교사의 업무경감이 되면서도 필요한 절차는 적정하게 지켜줄 수 있는지, 피·가해학생의 상처 입은 마음은 어떻게 하면 달래줄 수 있는지’를 컨설팅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진정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이렇게 하면 재심에서 이긴다, 진다’가 아니라 ‘이렇게 해서 우리 학생들이 다 같이 웃을 수 있었다’를 보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제도와 법률의 도입, 교육현장에서의 미지근한 반응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지난 8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현장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건의사항이었던 내용인 학교자체의 노력을 강조하고 피해·가해학생들의 관계회복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 자체 해결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미함이라고 하는 단어에는 ‘2주 이상의 신체적, 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진단서가 발급되지 않은 경우,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등에 대한 보복 행위이지 않은 경우’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었다. 교육현장에서 몇 건만 처리해보아도 허술하면서 정확한 판단이 어렵고 여러 조작이 가능한 저러한 조건들을 예시로 들어놓았다. 또한, 1호(피해자에 대한 서면사과)~3호(학교에서의 봉사)까지의 처분을 받은 가해자들을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는 점은 가해자의 배려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개정안의 핵심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이다. 이것은 수년전 국회와 교육부에서 논의를 할 때부터 지켜보았고 비판했지만 매우 선심 쓰는 듯한 정책에 불과하다. 단순 이관과 위에서 열거한 개정안들을 보고 교육현장에서 나는 누구도 동조하거나 칭찬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물론 학교폭력 업무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업무 자체를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전후 상담과 학생관리는 학교의 몫이며, 오히려 담당자가 교육지원청에 보고하거나 참여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자치위원은 현재도 매우 공정하게 선출된다. 선출위원들은 학교장, 일반 교사들까지도 영향력을 직접 행사할 수도 없고 매우 공정하게 판단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학부모였고 교사였고 학교전담경찰관이었고 지역사람이었다. 비록 현재 절차는 위에서 비판한대로 본질보다는 절차에 치중한 탁상공론식 관료제의 문서화된 규약과 절차만을 강조하는 시스템이지만, 우리 자치위원은 따뜻했다. 함께 가려고 노력했고, 구제하려고 노력했고, 엄마처럼 보듬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위를 열 테니 학교는 얼마나 편해졌는가!’라고만 한다면 실제로 학교폭력 사안에 있어 교사들이,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웃을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개정법률은 이제 다양한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긍정적으로는 학교자체 해결 사안이 많아졌기 때문에 오해가 있거나 애매한 작은 문제점들을 크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절차를 몰라 업무에 허둥대는 모습들이 조금은 더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호한 기준과 해석의 판단기준이 적절히 마련되지 않은 교육현장에서 수많은 전후 절차들은 그대로 놔둔 채 핵심만 이관한 이러한 개정안은 업무담당자를 또 다른 업무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으며, 피해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지원청의 새로운 전문가들 앞에서 얼마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문제점을 밝힐 수 있을 것인지, 피해 측에서 오히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으려는 우려는 없는지, 새로운 고민으로 남게 되는 시점이다.  


   모든 것은 명암이 있다.

  개정법률은 위에서 열거한대로 공(公), 과(過)가 서서히 보일 것이다. 또한, 현장교사에 불과한 내가 느끼는 것 이외의 정책적·법률적 의도가 있어 그 빛이 조금은 더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개정법률이 결코 우리의 업무를 경감시키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 언제까지 우리 교육계는 “이렇게 피해자를 진정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알게 되는 서로 간 나눔에 치중”하지 않은 채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할 것인지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그렇지만 나와 우리 교사들이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학교에 ‘학교폭력이 조금씩 줄었던 그 긍정적 의도’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며, 투정과 비난은 잠시 접어둔 채 우리 아이들의 상처 치유에 주력할 것이다. 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일지라도 예방을 목적으로 오늘도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모든 것은 명암이 있다. 교육현장 속에서 풀어낸 이 글의 학교폭력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에는 현장과 다른 온도의 개정법률에 대한 우려도 많이 섞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 편이다. 학생 편에서 모든 것을 지켜볼 것이며 또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할 것이다. 명암이 있는 이번 개정법률일지라도, 어두운 암을 최대한 밝은 명으로 바꿔 볼 수 있도록 또다시 현장의 숙제 속에서 고민할 것이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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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환 교사는 현재 만경여자고등학교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교육학술정보원(학교폭력·인권교육) 원격연수 콘텐츠 내용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업무(교내생활지도계, 인성인권부장)를 담당하였으며, 김제교육지원청 학교폭력 현장점검지원단 컨설팅 위원, 전주보호관찰소 군산지소 특별법사랑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2018년에는 학교폭력예방 및 근절 분야에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표창을 수상하였다.

필자
정태환
소속
전북 만경여자고등학교 교사
발행일
201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