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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고교교육 혁신, 의미와 전망

발행일
2021.11.17
필자
김성기
소속
협성대학교 교수




고등학교 체제 개편의 의

 

  ‘고등학교 체제 개편은 세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고등학교의 체제를 개편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대학교와 다른 고등학교의 체제를 개편하는 것이다. ·중등교육법45(목적)에서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고등학교 교육은 보통교육과 고등교육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교체제를 개편한다고 했을 때는 이러한 고등학교의 속성에 맞는 개편을 해야 한다.


  둘째는 고등학교의 체제를 개편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직원 인사나 학생지도, 교육과정 등을 부분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의 틀 자체를 혁신한다는 의미이다. 집으로 보자면 몇 가지 장식이나 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의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단순히 몇 개의 학교종류를 정리하는 수준에 그칠 일이 아니다. 고교체제 개편은 교직원과 학생, 교육과정과 교과서, 교육방법과 교육평가 등 관계된 모든 영역에서의 복합적 혁신을 의미한다.


  셋째는 고등학교 체제를 개편한다는 것이다. 개편한다는 것은 고쳐서 다시 새로 편성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미래형 고교교육을 얘기하는 것은 현재형 고교교육에 무언가 바뀌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몇 가지 수정하거나 교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거와 다른, 현재와도 다를, 미래의 새로운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개편을 해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형 고교교육을 말하기에 앞서 현재형 고교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고 상황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교체제 개편의 필요성

 

  고교체제 개편이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학교로서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고등학교는 보통교육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직업교육분야 특성화고등학교와 산업수요맞춤형 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두 대학진학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을 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라고 하면 으레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곳쯤으로 생각한다. 고교체제개편방안의 핵심이 자율형 사립고나 외고, 국제고 폐지인 것은 그 학교들이 본래의 교육목적과 다르게 대학입시경쟁의 꼭짓점에 자리 잡고 입시위주의 교육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와중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되어 온 학교들마저 덩달아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항암치료 중 정상세포까지 파괴되는 꼴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도록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초·중등교육법48조제2항은 고등학교의 교과 및 교육과정은 학생이 개인적 필요·적성 및 능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하여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현재 우리의 고등학교는 학생의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적성을 발견하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가? 일부 과목선택권이 있었지만 이것도 대부분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교과에 머물러 있다. 자신의 소질과 흥미, 관심에 따른 진로를 탐색하여 그 기본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있는데 그 체험을 학교 안에서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등학교는 이제 본격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기초적인 전문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고교체제 개편의 전망

 

이미 고교체제 개편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사고 등을 폐지하면서 고교서열화는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자칫 교육이 획일화될 것이 우려된다. 학교 간 다양화 정책에서 학교 안 다양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컨대 하나의 일반계 고등학교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과 흥미, 필요, 관심, 능력에 따라 교과와 교육과정이 편성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다행히 고교학점제가 법제화되어 2022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선택권을 부여하여 고교교육의 다양화를 실현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학생들에게 과목선택권이 일부 주어졌지만 그것은 사실상 학교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어서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로 인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먼 과목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고교학점제는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교학점제가 기초학력을 무시하고 학생의 선택권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과목이수가 실질적인 학력을 표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수업일수의 2/3만 채우면 성적이 낮아도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고교학점제는 누적된 이수 학점이 졸업 기준에 이르러야 졸업이 가능하게끔 만든 제도이다. 법적으로 학력은 學歷이 아니라 學力이다. 전자는 단순히 학교를 다닌 이력을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academic ability) 혹은 배워서 얻은 능력(성취도, academic achievement)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교학점제는 형식적 학력관에서 실질적 학력관으로 학력관을 바로 세우는 제도가 될 것이다.

 


정책 제언

 

고교체제 개편은 이러한 고교서열화 완화나 고교학점제 도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교들이 각자 스스로 혁신적인 교육모델을 창출하고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다양하게 편성할 수 있어야 고교체제 개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교다양화정책만도 못한 고교획일화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학교자치권 보장을 위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의 교육자치는 행정기관의 자치에 머물러 있다. 교육자치는 궁극적으로 학교자치로 완성된다. 학교가 해당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 필요, 관심, 능력에 맞춰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자치권한을 대폭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교과를 대통령이 정하고 교육과정을 장관이 정하는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백만 명의 다양한 학생들을 획일적인 교과와 교육과정으로 가르치겠다는 교육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할 때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맞춤형 교육체제가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기초학력은 말 그대로 다양한 선택과목을 이수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과 관련된다. 선택과목이라고 해서 아무런 기초 없이 이수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학습자맞춤형 개별원격교육체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녹화한 강의콘텐츠를 시청하게 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혁신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다. 법령에서 정한 것만 하게 하는 허가적 법제도로는 혁신을 할 수 없다. 법령에서 금지한 사항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허용적 법제도로 교육법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고교체제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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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교수는 현재 협성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육정책과 교육법을 주로 연구하며, 저서로는 ‘초등학교 학생행정 가이드’, ‘교권 바르게 찾아가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정책론’ 등이 있다.

필자
김성기
소속
협성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