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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교육을 준비하는 새로운 교육거버넌스

발행일
2022.05.19
필자
신현석
소속
고려대학교 교수





----------미래교육과 거버넌스

 

미래는 현재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공간에 놓여 있다. 우리는 예측한 미래의 모습이 기대에 벗어날 것을 알면서도 미래를 기획하고 정책의 청사진으로 설정하여 실천하고자 한다. 미래 시점과 현재의 시간적 틈이 클수록 청사진은 유물로 남게 되고, 실천의 가능성과 동력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가 설정한 미래 어느 시점의 교육도 미래사회의 변화 동향과 연계되어 논의되고 있지만,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의 오차는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오차는 미래의 교육을 예측하지 못하는 기술적 합리성의 한계라기보다는 내일 일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인간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해진 틀 내에서 미래의 교육을 묘사하고, 미래교육이 그럴 것 같은 가정과 추측을 제시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미래교육은 단순히 미래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이 실현된 상태 혹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이나 역량을 학생들이 학습하게 하여 미래에 요구되는 해결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의 미래교육 학습 프레임워크에는 개인과 사회의 웰빙(well-being)’을 구축하기 위해 개인이 함양해야 할 기본적 역량과 변혁적 역량, 그리고 역량이 길러질 수 있도록 작용하는 기제가 담겨 있다. 물론, 이러한 역량기반 교육의 강화가 미래교육의 모든 것을 담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OECD의 권고가 본격화된 이후 제4차 산업혁명의 발화로 대세를 점하여 문재인 정부의 미래교육정책과 새 정부 교육 분야 국정과제의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거버넌스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근대적 국가 중심의 통치로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들이 많아 조정(coordination)과 연결(networking) 그리고 협력(collaboration)을 통한 새로운 국가운영방식이 요구됨에 따라 등장하였다. 구체적으로, 거버넌스는 종래의 국가 중심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통치(governing)나 정부(government)를 대체하는 용어로써 정부 이외에 시장과 시민사회 등과의 파트너십 및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적 운영체제, 제도, 메커니즘 및 운영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방향성을 배태한 거버넌스는 정부, 기관, 혹은 조직 등 다양한 수준에서 운영되는 구조(structure), 관계된 일을 실행하는 작동과정(working process)이 결합된 복합적인 개념이다. 교육거버넌스는 교육제도와 정책의 운용과정에서 이해 동반의 관계자들과 공동체적 연대 체제를 구축하고 조정, 연결, 협력을 통해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네트워크 기반 운영방식을 뜻한다.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거버넌스는 곧 미래교육의 준비가 용이한 정책의 구조와 작동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교육거버넌스의 필요성

 

거버넌스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거버넌스 논의는 본질의 왜곡과 용어의 남발로 인해 오용되거나 과용되어 무정형적이거나 극단적인 정형화의 양극단을 맴도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버넌스 개념의 차용에 따른 오용과 남용의 문제는 교육 분야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거버넌스는 교육에 관한 국정운영, 교육통치, 통치구조와 권력관계, 의사결정 구조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거버넌스라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거버넌스는 통치와 의사결정 구조로 국한되는 제한적인 용법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에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그들 간의 권력관계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책 참여자들의 공동체적 연대와 권한의 공유를 지향하는 파트너십과 목표의식의 합의를 통한 진정성 네트워크의 형성이 결여된 구조에의 민주적 참여는 다원주의 형식논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각축장으로 변질된 공론장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별 소득 없이 끝난 대입제도 공론화가 그 예이다.

 

충분히 교육거버넌스의 진전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 교육부 권한의 교육청 이전, 학교자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단위학교의 자율운영 강화 등은 종래 국가 중심의 위계적 거버넌스를 협력적 교육거버넌스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거버넌스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육거버넌스가 구조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그에 따른 의사결정 방식과 업무의 합리적인 조정에 치중하며, 목표의 공유와 공동체적 유대감에 바탕을 둔 연결과 협력이 결여되면 각자도생의 정치적 지분 갈등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예측은 과거 국가중심의 독점적 정부 운영으로부터 얻은 교훈이기도 하면서 거버넌스의 본질 지향이 부족한 상태에서 거버넌스 구조의 형성에 초점을 맞춘 형식적 참여의 한계를 경험한 기우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거버넌스에 대한 본질의 이해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들과 그것의 작동과정에 대한 공유가 선행되지 않으면 교육거버넌스의 재편은 단순히 조직 구조의 개편과 협의를 위한 지분 참여적 성격의 이해관계 토로의 장을 마련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거버넌스는 운명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교육을 통해 준비하려는 목적의식과 이해를 공유하려는 지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 이유와 필요의 당위성을 보장받고 있다. 미래의 교육 목표에 접근하는 교육거버넌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앙, 지방 및 단위학교 수준의 거버넌스의 연장선에서 논의하되, 기존의 교육거버넌스 담론에서 발생되고 있는 의미의 왜곡과 논의 수준의 편협성, 그리고 협력적 거버넌스와 그 이상의 거버넌스로의 이행을 염두에 둔 발전적인 논의여야 한다. 따라서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거버넌스는 미래시제에 초점을 맞추는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교육거버넌스의 구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거버넌스를 개념과 실천의 측면에서 재구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의 정립

 

파스칼은 현재는 우리의 목적이 아니며, 과거와 현재는 수단이고, 미래만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래는 현재에 만들어진다.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교육거버넌스도 현재의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한다. 오늘날 우리가 새롭게 구상하는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는 미래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하며,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는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정책의 구조에 목적의식을 공유하는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고, 조정, 연결, 협력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작동과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여 실행하는 거버넌스의 본질적 의미에 충실한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교육거버넌스의 본질적 의미로부터 탈구된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교육위원회를 들 수 있다. 중앙수준의 교육거버넌스 구성 조직의 일원으로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주로 정치인들의 법제화를 통한 구조 중심의 편제화에 몰입하였다. 위원회가 담당할 업무의 설정 과정에서 역할 논의를 배제한 채 기능적으로 접근하였고, 정치집단 간 이해관계 충돌로 소관 업무의 범위는 최소화되어 중앙 교육거버넌스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참여하는 중앙 교육거버넌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의식이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공동체는 실종되었고, 개념의 오용과 왜곡된 해석을 통해 거버넌스는 정치적 갈등에 묻혀버렸다. 본질로부터 이탈된 거버넌스를 정상적인 의미로 복원하는 것은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 논의의 출발점이다.

 

둘째,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는 미래교육을 지향하는 수준별 거버넌스의 독자적인 구축을 모색하는 가운데 수준 간 상호작용적 의사소통을 통해 교육공동체적 관점의 아이디어와 거버넌스 규범 수립의 목표를 공유하는 균형적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작금의 교육거버넌스 논의는 전체 거버넌스의 핵심 아이디어가 수준별로 특화되는 분산적 의미보다는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단위학교는 학교대로 각자 현실의 편협한 이슈와 사정에 따라 각자도생하는 분열적 혹은 분파적 성격에 가깝다. 예를 들어, 지방 교육거버넌스는 교육지배구조 방식을 둘러싼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간의 국가통제 대 지방통제, 지방교육자치의 권한을 둘러싼 일반자치 대 교육자치, 그리고 교육자치의 이념을 둘러싼 보수 대 진보의 대립으로 거버넌스의 의미가 온전하게 발현되지 못하고 정치적 갈등만 표출되고 있다. 미래교육이 적용되는 세 장인 중앙, 지방, 단위학교의 거버넌스가 미래교육의 대의와 명분을 공약하고 쌍방향 소통을 통해 조정과 협력의 네트워크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미래지향적 거버넌스는 완성된다.

 

셋째, 미래지향적 교육거버넌스는 국가통제모형인 정부주도형 계층제 거버넌스를 넘어 협력적 거버넌스를 지향한다. 협력적 거버넌스는 공동체주의 이념에 기반하고 미래교육에 대한 목적의식의 공유가 거버넌스 참여 구성원들 사이에 전제되어 있고, 그 구성원들이 미래교육을 위한 정책의 전 과정에 정부와 파트너십 형성을 통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는 정부가 정책추진의 전 과정을 주도하는 계층제 거버넌스와 자기이익 추구를 위한 정책형성과정에의 참여에 국한되는 참여적 거버넌스와 차별화된다. 무엇보다도 미래지향적 거버넌스로서 협력적 거버넌스의 실질적인 구축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미래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상호협력체계와 의사결정 방안이 구비되어야 하고, 다양한 주체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영관리 전략과 환경적인 조건 마련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은 단순히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교육 정책의 추진에 관한 구조(참여 주체와 기구, 조직 및 법규 체계)와 작동과정(정책 형성-집행-평가) 및 운영 측면(협력 및 관리, 합의와 합리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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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석 교수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교육학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2016),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 및 교육대학원장(2017-2019)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의 고등교육개혁정책』, 『한국의 교원정책』, 『한국교육행정학론』, 『한국의 대학평가』 등이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교육정책, 교육정치, 고등교육이다.

필자
신현석
소속
고려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2.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