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문제진단

  • HOME
  • 월간 교육정책포럼
  • 월간 교육정책포럼
  • 현안문제진단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영재고등학교의 방향

발행일
2022.09.21
필자
이인아
소속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교수






  

----------현재의 AI 과학기술 연구와 영재고등학교

 

영재고등학교는 과학기술 분야와 같이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영재를 발굴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차별되는 교육을 통해 뛰어난 인재로 성장시킨다는 취지로 2000년 초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재고등학교는 꼭 과학 쪽의 영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재학교는 대부분 과학영재고등학교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영재고등학교 교육이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특히 논의의 구체성을 위해 첨단 융합과학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인공지능(AI) 과학기술 분야를 예로 들어 영재고등학교의 적합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AI 분야가 아니더라도 다른 첨단융합과학기술 분야에도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논의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현대 AI 연구는 실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지적기술적 노동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던 정보처리의 많은 부분이 컴퓨터의 성능 및 알고리즘의 개선과 함께 자동화되었고, 기계가 물체를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보거나 제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하는 정확도도 높아지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빅데이터가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고 활용 가능해지면서 고성능 컴퓨터가 날개를 달았다고 비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상된 성능을 가진 컴퓨터와 빅데이터, 그리고 뇌의 학습 원리 일부분을 차용하여 만든 AI 학습 알고리즘과 구조적 설계의 개선으로 인간만이 가장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다고 믿었던 바둑 등의 영역에서까지 기계가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기계학습 위주의 AI 기술 개발은 컴퓨터 과학 혹은 공학 분야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과 기업의 AI 분야에서는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인재의 수적인 열세는 개선되어야 하지만, 아마도 지금의 영재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포함해서 수준 높은 과학기술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대학에서 이러한 AI 기술 개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AI 기술 개발이 그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재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와 같은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교육이 과연 AI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최종 목적지에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래의 AI 과학기술 연구와 영재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와 영재고등학교들을 견학하며 깨달은 점 중 하나는 현재의 대부분의 과학고등학교나 영재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기술 교육은 대학에서 이루어질 수준의 교육을 고등학교에서 앞당겨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유로 고등학생들이 고가의 실험기기를 가지고 매우 수준 높은 실험을 하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해도 늦지 않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한다. , 생물학자에게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길러주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수학자나 물리학자에게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추상적 법칙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줘야 한다. 특별히 세상의 법칙을 보는 이런 눈을 타고난 사람을 우리는 영재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들을 선별하여 이들의 재능을 살려주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영재고등학교의 교육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미래의 첨단과학기술 분야는 융합적인 인재를 필요로 하므로 지금의 대학교육 선행학습식 영재고등학교 교육을 고집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AI 분야의 예를 들면, 미래의 AI는 인간의 뇌의 인지 작용을 모방하고 싶어 한다. ,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AI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컴퓨터의 창시자라고 볼 수 있는 앨런 튜링(Alan Turing)의 꿈이기도 했다. 이러한 미래의 AI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인간의 뇌와 뇌가 만들어내는 인지(cognition) 및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와 더불어 인문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 뇌의 정보처리는 전기적이며 화학적이므로 자연과학적 지식 역시 융합적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와 병행하여 컴퓨터의 구조와 정보처리 방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맞물려 이루어지면 비로소 뇌를 닮은 차세대 AI 기술개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 , 하나의 융합적 주제로 인간과 자연을 보는 안목을 길러줘야 한다.

 

혹자는 이러한 융합교육은 대학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학교육이 고등학교 때 이루어진 학습의 고차원적 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고등학교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기계와의 차이에 대한 사고의 틀을 형성한 학생은 대학에 와서 이미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작은 돛단배의 선장과도 같다. 대학은 이 선장에게 훨씬 기술적으로 뛰어난 배를 선물해줄 수 있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선장에게 특별히 해 줄 것은 없다. 다양한 목적지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오는 인재들이 넘칠수록 고급 지식과 기술의 창고와도 같은 대학의 교육은 빛을 발할 것이며 AI 연구 분야 역시 다르지 않다.

 

 

----------특수목적고등학교로서의 영재고등학교에 대한 우려와 제언

 

영재고등학교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마당에 특수한 영재고등학교를 더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결과가 잘못된 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내놓는 해결책은 대개는 단점을 선택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폐지나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것이 주를 이루어 안타깝다. 특수한 영재학교가 대학 입시의 수단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영재고등학교 선발 과정에서 진정 해당 영재고등학교의 목적에 맞는 영재만을 선발하고 선발한 영재는 목적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하되 대학의 입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 등과 시스템 차원에서의 협력과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을 빼면 특별히 자원이라 부를 것이 없으며 현재 출산율의 저하를 고려할 때 미래 인적 자원의 활용도 매우 선택적이고 맞춤형으로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일반적인 우수함을 갖춘 인재 양성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며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는 특수한 인재에 대한 수요가 미래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의 하나가 바로 현재의 영재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의 교육을 다시 되돌아보고 이들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를 설립한 목적에 맞는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1.png

이인아 교수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뇌인지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학과장, 서울대학교 AI연구원 실무추진위원 및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유타대학에서 신경과학(Neuroscienc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 신경생물해부학과, 보스턴대학의 뇌-기억 센터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2006년부터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했다. 『또 다른 지능, 다음 50년의 행복』(공저) 집필을 비롯해 네이버와 서울대 AI연구원이 추진하는 <모두를 위한 AI>, <생각의 열쇠, 천개의 키워드> 강연 시리즈 등 대중 강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필자
이인아
소속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교수
발행일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