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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해력인가
- 발행일
- 2021.08.19
- 필자
- 강대중
- 소속
-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코로나바이러스 델타 변이가 인도를 휩쓸던 지난봄 국내외 언론은 화장장으로 변한 주차장 풍경과 함께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몸에 소똥을 바르며 주문을 외는 인도인들을 보도했었다. 그렇게 해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의사의 코멘트가 뒤따랐지만 의료 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에 부닥친 이들에게는 과학적 지식보다 누군가가 전해준 그 ‘비법’이 더 설득력 있는 방역 수단이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자주 손을 씻는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의사와 과학자, 정치인은 물론 영향력 있는 연예인까지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국이나 독일 같은 과학기술 선진국에서도 수만 명이 마스크 거부 거리 시위를 벌였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두고 코로나 방역 수칙과 관련된 ‘가짜 뉴스’가 사람들에게 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모바일 기기 보급과 함께 1인 미디어,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보편화된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는 가짜 뉴스가 더 빨리 더 쉽게 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똥을 바르거나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가짜 뉴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짜 뉴스를 판단하는 힘, 즉 문해력(文解力)의 문제였을까?
글월 문(文) 풀 해(解), 두 한자어의 조합인 문해(文解)는 고 황종건 교수가 1960년대 영어 단어 literacy와 illiteracy를 각각 문해와 비문해로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은 문맹(文盲)이라고,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문맹퇴치(文盲退治)라고 불렀었다. literacy를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식자(識字)라고 번역하고, 국내 학계에서는 문해, 문해력과 함께 문식성(文識性)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영어 발음인 리터러시도 사용한다. 구글 검색(2021년 8월 19일)을 해보면 문해(88만여 건)나 문해력(87만여 건)이 리터러시(64만여 건)나 문식성(2만 7천여 건)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기초문해
문해 혹은 문해력은 중국어나 일본어의 식자(識字)와 같이 글이나 글자를 안다는 좁은 의미로 우선 이해할 수 있다. 기초문해(basic literacy)라고 불리는 이런 문해력이 우리 삶에서 의미하는 바는 노년기에 비로소 한글을 습득한 성인들의 자작시에 극적으로 나타난다. 2013년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 최우수상 수상작 「무서운 손자」(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마을경로당 한글학교 강춘자 작)도 대표적 사례이다.
어릴 적/ 할머니 다리에 누워/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 우리 손주는/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 말로 하는 이야기라면/ 손으로 하는 음식이라면/ 손주 놈이 해 달라는 대로/ 해줄 수 있으련만// 달려가 보듬어 안고파도/ 손주 놈 손에 들린/ 동화책이 무서워/ 부엌에서 나가질 못 한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17년 전국 18세 이상 성인 인구 4,004명을 표집해 실시한 성인문해능력 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 조사 대상의 7.2%였다. 전체 인구 대비로 약 311만 명에 해당한다. 기본적인 읽고 쓰고 셈하기는 가능하지만, 일상에서 활용이 어려운 수준도 5.1%로 조사되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기초문해가 필요한 성인 인구가 상당한 규모이다
기능문해
그런데, 한자어 문(文)에는 글 외에도 무늬, 채색, 얼룩이라는 뜻도 있다. 이때 문(文)은 문화(文化)에서와 같이 인간이 역사 속에서 성취하며 이룩한 자취를 의미한다. 즉, 인류가 오랜 세월 물질과 정신에 새겨 넣은 것이 문(文)이다. 이런 의미의 문(文)을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문해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인간 존재로 제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따라서 문해는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 삶의 다양한 영역과 관련 속에서 정의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글자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특정 주제나 영역의 지식을 기능적으로 활용하고 그 세계의 참여자가 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문해이다. 이것을 기능문해(functional literacy)라고 한다. 기능문해는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금융문해, 정보문해, 컴퓨터문해, 정치문해, 문화문해, 미디어문해, 건강문해 등이 그런 사례인데, 디지털 리터러시처럼 문해 대신 리터러시로 표기하는 때도 많다.
기능문해는 지식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사회경제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영역에서는 문해 상태이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비문해 상태이기도 하며, 특정한 영역에서도 문해 상태였다가 비문해 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문해와 문해 중간의 어떤 지점에 유동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일례로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고학력자 가운데에도 신문의 경제 기사나 신산업기술 기사를 읽을 수는 있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문해력은 어휘력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2020년 코로나19를 특정 지역명과 증상을 빗대어 ‘○○독감’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낯설기만 했던 팬데믹을 말하고 이해하는 어휘의 부족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코로나바이러스가 ‘호흡기 비말(飛沫)’을 통해 감염된다는 말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했다.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해력을 지속해서 향상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은 우리 시대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것이다.
비판문해
글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문해력의 비슷한 말은 독해력(讀解力)이다. 브라질의 문해 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독해는 글자로 된 텍스트에 숨겨진 암호를 푸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text)와 맥락(context)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파악하여 얻는 이해라면서 비판문해(critical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Freire & Macedo, 1987). 즉, 문해는 글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읽기로 나아가며,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고 변혁하는 주체의 형성이 문해교육의 목표라는 것이다. 프레이리는 브라질 농민을 대상으로 한 문해교육 실천 과정에서 교육자에게 종속된 수동적 객체를 길러내는 은행저금식 교육을 비판하며 자신과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길러내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한 바 있다.
비문해 성인학습자들이 참여하는 문해교육 현장에서는 항상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2020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최우수상 수상작인 「내 인생의 봄」(울산남부도서관 지정순 작)은 한국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비판적 독해와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소박하게 담고 있다.
여자는/ 글을 몰라도 되는 줄 알았다// 여자는/ 남편의 말에 복종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여자는/ 애 키우고 밭 일구고/ 하루종일 일만 하는 줄 알았다// 세월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데/ 나는 매일매일 추운 겨울만 살았다// 내 눈이 밝아지고/ 내 손이 글을 쓰고/ 내 발이 한글학교에 데려다 주고// 70이 넘어서야 나는 봄을 만났다/ 영원히 봄하고만 놀고 싶다.
비판문해는 학습자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문해를 이해한다. 문해는 기술이나 기능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대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지배 질서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과정이다. 세상 읽기, 세계 독해로서 문해는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의 형성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래문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우리 삶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물리적인 거리두기와 비대면 온라인 소통이다. 전자가 각자의 건강을 지키며 대유행의 고리를 끊는 실천적 지침으로 작동한다면, 후자는 인류가 성취한 지식과 기술에 힘입어 일상을 유지하는 다양한 실험을 이끌고 있다. 이 두 기둥 가운데 후자를 흔히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이라 부른다. 비대면 온라인 소통은 재택수업, 재택근무를 통해 학습생활과 직업생활의 새로운 표준(‘뉴 노멀’)을 디지털 공간으로 전면 확장했다. 학교에는 웹-기반 학습관리시스템이, 직장에는 원격 업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메타버스라 불리는 가상의 세계로 비대면 온라인 소통 공간은 진화하고 있다. 소비생활의 디지털 전환도 확연하다. 비대면 온라인 소통은 디지털 사회의 참모습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의적으로 형성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한편, 사스, 메르스, 에볼라에 이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에 대한 집단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는 앞으로도 새로운 감염병의 위협에 노출된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감염병 바이러스들은 동물에서 유래하였지만, 인간에게 옮겨온 뒤에 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호흡기나 체액을 통해 급속히 퍼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옮겨지는 원인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활동으로 그동안 인간이 접근하지 않았던 동물만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기후 위기로 지구 생태 환경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의 지속가능성, 자신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준 충격이 매우 커서 코로나19 이전의 과거에는 당연시하던 규범으로 회귀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인류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규범이 작동하는 세계일 것이며, 우리에게는 그 세계를 만드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다. 엄밀히 말하면 미래는 현재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세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과 문해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아직 쓰여 있지 않은 미래를 이해하는 이른바 미래문해(futures literacy)가 절실하다.
미래가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이다(Miller, 2018). 현재의 우리는 미래의 한 가지 확실한 모습으로 디지털 전환을 예측한다. 또, 현재의 환경 파괴적 생활양식을 유지하다가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하다고 예측한다. 현 단계의 미래문해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는 이 두 가지 미래문해를 모든 생애 단계, 모든 생활 영역에서 전개되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어갈 시민 주체를 형성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왜 문해력인가?
유네스코는 1985년 3월 19~29일 파리에서 열린 세계성인교육회의에서 학습권 선언을 채택하였다. 학습권은 읽고 쓸 수 있는 권리, 질문하고 분석할 수 있는 권리,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기록할 수 있는 권리, 모든 교육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개인적·집단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구성된다.
1997년 12월 13일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제3조(학습권)에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였다. 유네스코의 학습권 선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2021년 6월 8일 개정된 「평생교육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및 행복 추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왜 문해력인가? 우리 교육의 근골인 학습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가 문해, 문해력이기 때문이다. 기초문해, 기능문해, 비판문해, 미래문해라는 네 차원에서 살펴본 문해, 문해력은 습득의 대상이면서, 참여로 갱신되는 것이자, 창조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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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가평생교육진흥원(2019). 2017년 성인 문해 능력 조사(개정본). 국가평생교육진흥원.
Freire, P., & Macedo, D. P. (1987). Literacy. Praeger.
Miller, R. (2018). Futures Literacy: transforming the future. In R. Miller (Ed.), Transforming the future: Anticipation in the 21st century (pp. 1-12). Taylor & Fran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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