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 HOME
  • 월간 교육정책포럼
  • 월간 교육정책포럼
  • 교육시론

대한민국 교육자치 70년, 응답하라 1949

발행일
2021.10.20
필자
고전
소속
제주대학교 부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지방교육자치법 제정 30주년에 1949년 제정 교육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2021년 들어 여기저기서 지방자치 30, 교육자치 30년의 표현들이 눈에 띈다. 자치단체장 주민선거와 더불어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되던 1991년에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까닭이다. 그런데 교육자치의 중핵기구인 교육위원회는 이미 1949년 제정 교육법 때부터 있어 왔다. 사실, 이 제도는 한국과 일본에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이식한 미군정의 선물’(미군정장관 Dean 소장의 표현)로 주어졌다. 정부수립 직전인 1948812일에 敎育區 설치에 관한 법령敎育區會의 설치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었고, 이것이 1년 뒤 1231일 제정된 교육법상의 교육위원회와 교육구의 밑그림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초 교육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19526월이니 이때로부터 계산해도 한국의 교육자치 역사는 이미 70년을 맞고 있다. 교육자치 70년은 이를 의미한다. 비록 미국식 제도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당시까지의 국가주도 및 일반행정 주도의 획일적인 교육행정에서 벗어나야 함을 각성시킨 입법임에는 분명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19625·16 군사정변기엔 교육위원회 및 교육감 제도를 일시 폐지하여 일반 행정에 흡수·통합하기도 했고, 유보기(19621991)에는 시도교육위원회를 두고 합의제 집행기관(지방의회는 의결기관)으로서 명맥을 유지시켰다. 1991년 지방자치 도입 후 교육위원회는 합의제 심의·의결기구로 되었고, 교육감은 교육위원회에서 위원 중에서 선출했다. 교육위원들은 기초의회에서 2배수 추천 후, 광역의회에서 정하는 이중 간선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지방교육자치법은 이 제도의 목적을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그리고 지역교육 특수성 신장에 둠으로서 70년 제도사의 맥을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교육감 선출은 학교운영위원회 선거인(97%)과 교원선거인(3%)으로, 2000년엔 학운위 전원 선거인단에서 선출되었다. 최초의 주민직선은 2007214일의 부산광역시교육감 선거에서였다. 비록 교육감 단독 선거의 투표율은 15.3%였지만 의미는 달랐다.

 


   70년 최대의 성과 : 주민의 교육자치 의식을 일깨운 내가 뽑은 교육감


2007년 연말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네 곳의 교육감 선거결과는 대통령후보 기호 2번과 같은 후보가 전원 당선되었다. 처음으로 지방선거와 같이 치러진 2010년 선거에서는 여전히 기호효과(1, 2번 혹은 여야 시도지사와 연계당선)가 나타나 깜깜이 선거, 정치선거라는 오명도 받았다. 2014년 선거에서는 가로열거형 순환배열 투표용지를 개발하여 기호효과를 상당히 극복하고 이른바 진보교육감 대세(17명중 14) 시대를 열었다. 교육감 역시 자신의 정책으로 주민의 선택을 받아야 했고, 임기 중에는 학교와 주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실현하는 자세로 변했다. 시도지사가 여든 야든 상관없이 내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하여 주민의 적극적인 선택이 이루어졌다. 그 만큼 교육문제에 대한 주권의식, 즉 교육자치 인식을 높여준 계기가 되었다. 교육감의 눈높이 역시 학교현장에 좀 더 다가가게 되었다. 이것이 교육감 직선제가 가져온 최대의 학습효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 선거에 머물러야 하는 선거운동의 한계와 공약에 대한 홍보부족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정책대결을 정치선거로 몰아가며 주민직선제를 시도지사 임명제로 전환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서 지속해야 할 가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주민들은 2007년 도입 이후 2010, 2014, 2018선거 등, 네 차례나 경험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국민여론조사(KEDI POLL)에도 교육감 직선제를 선호하는 긍정적 평가는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교육자치 역사가 성숙과 성장의 역사인 것만은 아니었다. 선거 방법을 둘러싼 수많은 헌법재판은 이 제도를 둘러싼 관계집단의 이해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교육자치 시행 70년의 역사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을 꼽으라면, 교육자치 관련 의결기구에서 교육전문성의 관여 여지를 완전히 배제시킨, 2014년에 폐지시킨 16개 시도의 교육의원 일몰제이다. 이른바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제도의 유형은 입법 정책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재량권에 터하여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협한 끝에 내린 하수(下手) 중의 하수였다.

 


   70년 최대의 패착 : 교육자치 의결기구를 형해화(形骸化)시킨 교육의원 일몰제


통상, 교육자치는 교육문제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에 교육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여 교육의 특수성(전문성 및 자주성 등)을 담보하고자 하는 제도로 설명되며, 국가와 지방의 교육관련 통치기구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집행 및 의결기구에 반영되는 정신이기도 하다.


2006년 연말 지방교육자치법을 개정해서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교육위원회를 지방의회 내 상임위원회로 통합하는 대신 과반수의 교육전문가 출신 교육의원제를 도입하는 방안은 교육계의 분리론과 행정계의 통합론을 연계시킨 조치였다.


그러나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법을 통해 먼저 도입된 교육의원제도는 2010년 전국 확대를 앞두고 1회에 한해서만 실시하는 전대미문의 일몰제로 개정되었다. 이 정치적 타협으로 교육자치제는 집행기구인 교육감만 남는 이른바 반쪽 교육자치가 되었다. 교육의원제를 교육위원회 폐지의 지렛대로 사용한 셈이고 이제는 교육감 임명제를 넘보고 있다.


일반의원들로만 구성된 교육위원회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중에 제주도에서만 4회째 교육의원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실험에 성과가 있다면, 제주도로부터 교육의원제가 일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고경력 중심의 교육의원으로 무투표당선이 주류를 이룬 제주에선 젊은 교육의원의 진출을 위한 제도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 모두 현직불패 신화를 깨고 제도개선에 나설 때다.

 


   잊지 말아야 할 판단의 준거와 방향 : 현장에 응답하는 학교자치, 그리고 연계·협력


지금의 교육자치를 판단할 때 무엇을 판단 준거로 삼을 것인가는 학자들과 사법부가 밝혀왔다. 교육행정학회에서는 백현기 박사가 1958년에 교육행정의 법규상의 원리를 기회균등, 민주주의, 지방분권주의, 자주성 존중으로 소개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김종철 박사가 1965년에 지방교육자치제도의 원리로써 지방분권의 원리, 민중통제의 원리, 일반 행정으로부터 분리·독립 원리(1989년에 자주성 존중으로 수정), 그리고 전문적 관리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 오늘날 학계의 일반론이 되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반면 지방자치학계에서는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이 다수이고, 헌법학계나 교육법학계에서는 헌법조화론적(교육의 자주성+지방자치)으로 해석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교육감 및 교육의원 선거재판에서 어느 일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지방자치·교육자주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헌법적 가치이고, 교육위원회의 설치 형태(지방의회 위임형, 통합형)나 교육의원제의 실시여부, 교육감의 선출방식(주민직선제, 시도지사 임명제) 등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의감정을 수렴한 국회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그런데 이를 잘못 해석하면 어떤 방식이든 입법정책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데, 교육자치의 역사와 국민의 교육 민도(民度)에 부합하여야 한다.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교육자치제도의 존재 이유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 교육자치제는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기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단위학교와 교실에서 자주적이고 전문적이며 지역의 특수성을 살린 교육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단위학교에서 꽃피워야할 교육자치, 즉 학교자치에 대한 논의는 향후 교육자치제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이다.


물론, 국가수준에서의 청사진 또한 교육자치의 정신에 걸맞게 기획되어야 하고, 국가와 지방간의 역할분담과 상호협력의 원칙으로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에 각각 기여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 준비 중인 국가교육위원회는 단지 목소리 큰 교육국회가 아닌 국가수준의 교육자치 밑그림을 논의하는 자리여야 한다. 이런 기획은 1949년 교육법상 중앙교육위원회에도 있었다. 다만, 현 정부들어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국가와 지방간의 교육분권법이 성안되지 못한 채 그 부채를 국가교육위원회가 안고 출발하는 것은 아쉽다. 각자의 집단 이익만을 대변하는 호통위원회가 아닌 일하는 위원회이길 바래본다.


이러한 학교자치를 중점에 둔 지방과 중앙의 교육자치 역할분담 방향을 가로막는 걸림돌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지방분권법에 규정(12)국가의 지방자치-교육자치 통합 노력 의무교육자치 실시 근거이다. 노무현정부에서 지역주민의 참여와 지자체의 책임을 강조한 규정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단의 지방자치학자들에 의하여 통합 노력의무 규정으로 탈바꿈된 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교육자치분야에서 청산되어야 할 최대의 적폐 규정이다. 게다가 한시적 특별법에 70년 전통의 교육자치의 실시 근거를 인위적으로 신설한 것은 지방교육자치법의 존재와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매개로하는 교육자치의 입법체계를 부인하는 반헌법적 개정이었다.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간의 연계·협력의 모색은 이 규정의 폐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전.png

고전 교수는 현재 제주대학교 부총장(겸 교육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교육법학회 회장,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행정연구팀장, 동경대학 대학원 연구조교수, 대구교대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교육법과 교육자치, 교원정책, 그리고 일본교육개혁론이다.

필자
고전
소속
제주대학교 부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발행일
2021.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