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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교육정책이 알게 모르게 꽤 굵직한 경계선들을 넘은 한 해

발행일
2021.12.15
필자
김진경
소속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





히 교육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전문가라고 하지만 막상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교육정책은 대입, 유아, 보육, 돌봄과 같이 일상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영역 정도이다. 그 외 영역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고가 나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2021년은 일반인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교육정책이 알게 모르게 꽤 굵직한 경계선들을 넘은 한 해이다. 코로나19 비대면 수업의 장기화에 따른 디지털 미래의 도래, 고교무상교육 전면실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의 통과와 국가교육위원회 준비단 설치, 미완이지만 학생 선택권을 강화하는 2022 교육과정 개편 추진 등이 그것이다.

 


로나19 국면 비대면 수업의 전면화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세계적 IT 강국으로서 디지털소통이 전면화 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산업사회의 분절적 시스템과 법제도가 경계를 허물고 관계망을 무한히 확장해가는 디지털 사회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비대면 수업이 전면화 되었던 초기에 600만 명이 동시에 안정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교육플랫폼 구축이 안 되어 잠시 애를 먹었지만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기술력은 충분히 있는데 그 동안 절박한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교육플랫폼들이 분절되고 분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용량 디지털 교육플랫폼 구축은 다양한 앱 개발을 통해 콘텐츠들이 우리 교육플랫폼에 축적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 교육플랫폼으로 확장해 간다면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기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구글 등의 앱을 활용하면서 우리의 교육플랫폼에 콘텐츠가 축적되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비대면 상황에서의 디지털 소통의 전면화는 어느 플랫폼의 앱을 쓰느냐에 따라 콘텐츠 주권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우선적 원인은 디지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절과 잘못된 분업관계 형성에 있는 듯싶다. 우리나라는 법령상 제도교육 영역에는 디지털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법제도 관행이 오래 이어지면서 디지털 기업과 기업들 간의 관계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첫째, 다음 카카오 등의 대형 플랫폼은 제도교육으로부터 배제되어 본격적인 교육플랫폼으로서의 내용을 갖추지 못함에 따라 세계적 플랫폼으로 발전해 가는 데 한계를 갖게 된다.


  둘째, 디지털 중소기업은 주로 첨단의 앱 등을 기동성 있게 개발하는 기술력 중심으로 분업이 되어야 하는데 제도교육에 참여하는 디지털 중소기업들은 디지털 대기업처럼 A부터 Z까지 다하지만 역량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 결과 제도교육 내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기술 수준이 시장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기술 수준에 비해 뒤떨어진다.


  셋째, 제도교육에 참여하는 디지털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존립근거를 기술적 경쟁력에서 찾기보다는 제도교육에서 갖는 독점적 지위에서 찾는다. 그로 인해 경계를 허물고 관계망을 무한히 확장하는 디지털의 본질로 산업사회의 분절적 시스템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그 분절적 시스템과 유착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분절성 때문에 데이터가 축적되어도 빅데이터로 활용이 되지 못함에 따라 디지털 기술이 불필요한 잡무를 줄이고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경계를 허물고 관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디지털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디지털기술의 보급과 함께 산업사회의 분절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과 법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하나의 성과일 것이다. 물음을 갖는 것이 대답을 얻는 지름길이니까.

 


2021년은 한국교육사에 초중고 무상교육이 완성된 해로 기록될 만하다. 그간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산업고도화로 상급학교 진학률이 급격히 확대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한 국가의 교육투자 확대는 더디게 이루어져 초··고 무상교육의 완성은 지연되어 왔다.


  초등 의무교육은 1946년에 시작되어 1951년에 완성되었으나, 초등교육이 각종 집부금과 교과서 대금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완전 무상교육이 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였다. 초등 완전 무상교육이 실현되는 데 25년 이상 걸린 것이다.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은 중학교 무시험 진학으로 1971년부터 취학률이 상승함에 따라 박정희 정권이 1974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약속하였으나 무산되었고, 1985년에야 농어촌부터 단계적 시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정부에 이르러서야 전국 실시로 완성되었다. 정부가 처음 국가정책으로 약속한 이래 30년이 걸린 셈이다.


  이번 고교무상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의 무상의무교육 실현과정에 비하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 점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국정과제로 설정했고 원래 계획보다 앞당겨 20199월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20202, 3학년, 2021년 전 학년 실시로 확대 3년 만에 완성하였다. 무상의 범위도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대금까지를 포함하여 명실상부한 무상교육을 실현하였다. 2021년 고교무상교육에 소요되는 총예산은 19,751억 원인데 국고지원 47.5%, 교육청이 47.5%, 지자체가 5% 분담한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교무상교육의 신속한 완성은 문재인정부의 강력한 포용사회 실현의지의 교육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기실 고교무상교육은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었다. 국제적으로는 OECD 36개 회원국 중 고교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었다는 점이 그 시급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고등학교 취학률이 99.7%인 상황에서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서는 직원 자녀들의 고교학비를 지원하고 있어 그런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열악한 중소기업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사실상 이중으로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교무상교육을 실현하여 국가가 교육의 기회균등과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고교 무상교육 실시로 124만 명의 고교생들이 연간 160만 원의 교육비를 아끼게 되었고, 가계 가처분 소득이 월 13만 원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고교무상교육의 실현은 또한 미래 지능정보사회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지능정보사회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포함한 일정 수준의 기본학습능력이 없으면 직업을 갖기 어려운 것은 물론 정보에서의 소외로 인해 원활한 정상적인 인간관계 형성 등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능정보사회에서 기본학습능력은 기본 인권에 가깝다. 고교무상교육은 기본인권에 가까워진 기본학습능력에 대한 국가책임을 높임으로써 미래 지능정보사회에 대응하는 적극적 의미가 있다.


 

2021년은 또한 국가교육위원회라는 혁신적 교육 거버넌스가 법제화된 해로 한국교육사에 기록될 만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통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정권의 임기를 넘어서 국가교육비전을 수립하고 중장기 교육정책을 심의 의결하여 안정적으로 추진되도록 점검하는 기구이다. 우선 위원에 여야 국회 추천 몫을 크게 두고, 위원의 임기를 3년으로 대통령 임기와 엇갈리게 하여 교육정책의 정치적 중립성과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안정적 추진을 도모한 점을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평가할 만한 점은 위원에 청년 1, 학생 1, 학부모 2명을 의무적으로 추천하도록 하고, 광역지자체 추천 1명을 당연직으로 넣도록 하였으며, 상설 자문기구로 500명 한도의 국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정책의 현장성을 높이려 한 점이다.


  서구 추격형 산업화를 추진하던 지난 산업화 시대의 교육 모토는 서구에서 생산된 새로운 지식을 빨리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으면 짧은 시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주입 암기케 함으로써 서구 선진국을 하루빨리 쫓아가야 한다.”였다. 이러한 추격형 산업화 교육시스템에서는 서구의 교육이론과 정책모델이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서구이론과 정책 모델에 정통한 중앙정부의 정책관료와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려 보내고, 교육청과 학교장이 그 실행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매우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입안되고 실행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도 이미 선진국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여 더 이상 따라갈 모델이 없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가 그간 모델로 삼았던 서구 선진국들은 큰 혼란을 겪었고 오히려 한국이 세계적 모델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 현실에 바탕하여 우리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 역시 서구 추격형 산업화 시대의 중앙집권적 하향식 체제에서 교육현장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삶에 근거를 두는 분권적이고 상향식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러한 정책수립 집행 시스템의 대전환을 위해 만들어지는 기구이다.


  위와 같이 살펴볼 때 교육과정의 개발고시 업무가 교육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서구 추격형 산업화 시대 교육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지식 중심, 학문 중심의 중앙집권적 교육과정을 통해서였다.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나 서구의 어느 나라고 네가 사는 곳은 변방의 변방의 변방이다. 그러니 너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 도시로 대도시로 서울로 가능하다면 미국이나 서구의 어느 나라로 떠나라.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이 압축되어 있는 교과서를 열심히 암기하여 학교교육에서 성공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은 압축적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서구 모델을 따라가는 산업화 시대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추격형 산업화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첨단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구조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추격형 산업화 시대의 학문 중심 중앙집권적 교육과정은 한국이 첨단하드웨어 산업 중심에서 첨단소프트웨어 산업 중심으로 나가려 할 때는 결정적 장애가 될 수 있다. 첨단소프트웨어 산업은 첨단하드웨어 기술과 지식문화산업이 융합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자기가 사는 곳을 변방의 변방의 변방이라 믿고 그곳에 축적된 삶으로부터 나오는 지식문화적 자산을 낙후된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첨단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전환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곳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여 세계를 창출하고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방향에서 교육과정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개발 고시 업무가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오는 것은 이러한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국가교육회의와 교육감협의회의 참여 아래 교육부는 2022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을 학습자의 삶 중심 교육과정으로 잡고 1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 참여형으로 추진하였다. 이제 교육과정 총론의 대강을 발표하는 수준이어서 미완이지만 중요한 한 걸음을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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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의장은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으로 있다. 2018.3.~2018.12.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상임위원 겸 기획단장, 2009.8.~2010.8. 중국 소주대학 초빙교수, 2005.5.~2006.4.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전)양정고등학교, (전)전동중학교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그림자 전쟁(2011), 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2011), 겨울옷을 입은 아이들(2010), 고양이 학교(2002) 등이 있다.

필자
김진경
소속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
발행일
20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