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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부모의 역할

발행일
2024.02.21
필자
권희경
소속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부모의 고민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를 볼 때, 또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노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자녀의 사회성에 관한 염려는 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계속된다. 학교에서 아이가 따돌림의 대상임을 알게 되는 심각한 경우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크고 작은 갈등에 관해 이야기할 때 혹시 우리 아이가 사회성은 부족하지 않은지 생각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다투고 화해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친구들 간의 ‘다툼’보다는 ‘학교폭력’이라는 용어가 더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듯도 하다. 코로나19로 상대적으로 대면 접촉의 기회가 제한되었던 젊은 세대들의 사회성에 대한 염려 또한 낯설지 않다.



   사회성에 관한 오해

 

   아이가 친구와 어울리지 못할 때, 유아기 또는 아동기 자녀를 둔 부모는 흔히 아이에게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외동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려는 이유 중에는 사회성 발달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스스로 어울리지 못하는 자녀를 위해 소위 ‘플레이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직접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아동기를 벗어나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의 교우 관계에 이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부모들은 어울림을 어려워하는 자녀에게 ‘꼭 어울릴 필요는 없다’라는 말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어울림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사회성 문제의 원인을 대면 접촉 기회의 부족으로 돌린다. 이와 같은 생각들에는 타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사회성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한편 아이가 친구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을 때 부모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우선 부모는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왜 그랬어?’ 또는 ‘누가 그랬어?’가 갈등을 겪을 때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갈등은 종종 ‘잘못한 자’와 ‘잘못을 당한 자’의 구도 안에서 해석된다. 적지 않은 부모가 내 아이의 잘못보다는 상대방 아이의 잘못에 더 민감하다. 상대방 아이가 내 아이에게 저지른 잘못이 사소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부모는 상대방 부모에게 심리적 또는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이에게 스스로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방의 잘못을 주장하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와 같은 갈등 해소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사회성과 관련된 문제해결에 있어서 잘잘못 또는 손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사회성의 기초: 독립성과 주체성  


    친구, 보다 정확하게는 또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사회성이 증가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사회성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다른 인간과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때 교류와 협력을 ‘잘’ 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이 ‘사회성’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 ‘잘’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해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불안도가 높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은 타인과 잘 지내기 어렵다. 심리적 또는 실질적 문제해결에 있어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은 타인과 대면할 때 스스로 당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건강한 사회성 발달을 위해 개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은 독립성과 주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기르기 위해서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삶과 행동에 대한 자기결정성, 즉 주체성에 대한 욕구를 타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결정성에 개인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개인이 성장한 환경적 조건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심리적 지지와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반면 매번 부모의 결정에 따를 것을 요구받고 행동의 문제점에 대해 빈번히 지적받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성격으로 자라기 쉽다. 또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아이는 실패에 크게 좌절하지 않고 자기 삶의 주도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정서적으로 냉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행동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어렵다. 


   이처럼 사회성의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성과 주체성을 기르기 위해서, 부모는 우선 자녀를 세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녀가 혼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고, 특히 집 밖의 환경에서 불안도가 매우 높다면, 당장 그 아이의 타인과의 교류 시간을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독립성과 주체성, 나아가 사회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기 쉽다. 이와 같은 아이에게는, 타인과의 접촉 이전에 먼저, 익숙하고 안전한 가정에서 자율적 선택과 독립적 시도를 반복 경험하고, 이에 대한 격려와 지지를 제공함으로써 자신감을 획득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받을 만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부모-자녀 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검토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녀가 한 명의 독립된 성인으로서 세상에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한 건강한 심리적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사회성의 핵심: 갈등 조율의 과정


   독립성과 주체성이 있다고 타인과 교류 및 협력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립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인이 모두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시간과 자원이 한정된 가운데,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를 때, 타인과의 갈등이 발생한다. 각자 자신만의 욕구와 신념을 가지고 있는 개인에게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매번 크고 작은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사회성의 핵심은 제한된 환경 내에서 타인의 욕구와 가치를 살피는 가운데,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실현해 가는, 즉 자신과 타인의 욕구와 가치를 원만하게 조율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매번 자신의 욕구와 가치, 즉 이익을 실현하는 사람이 사회성이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A와 B 두 친구가 함께 놀기를 원하지만, 각자 원하는 놀이가 다른 상황에서, A가 원하는 놀이를 하게 되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러한 상황을 앞서 언급한 손익의 구도로 해석한다면, 원하는 놀이를 하게 된 A는 이익을, 원하지 않는 놀이를 하게 된 B는 손해를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을 이와 같이 해석한 B의 부모는 흔히 ‘다음에는 네가 원하는 놀이를 하도록 하라’라고 조언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성의 핵심은 이처럼 갈등 조율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A가 계속 자신이 원하는 놀이만을 고집한 반면, B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한 결과 스스로 양보하기로 하였다면, 누구의 사회성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경우 B의 부모는 아이의 손해를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타당하다.


   A가 계속 본인의 놀이만을 고집한다면, B에게는 대략 (1) A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함으로써 B가 원하는 놀이의 횟수를 늘리거나, (2) 계속 A가 원하는 놀이를 하면서 함께 놀거나, (3) A와의 놀이 횟수를 줄이거나 또는 더 이상 A와 놀지 않는 것의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B는 우선 (1)을 시도해 볼 것이다. 그리고 A가 상호 호혜성에 관한 윤리적 감수성이 있다면,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B가 상대적으로 특정 놀이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지 않고, 타인과 조화롭게 잘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라면 (2)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B에게는 (3) 역시도 고려해 볼 만한 선택이다. 만약 B가 (3)을 선택하면, A가 마음을 바꾸어 B의 의견을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결정의 과정에 B의 자발성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B는 다양한 친구들과 상호교류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본인에게 적합한 의견 조율 능력을 터득해 갈 수 있다. 



   사회성 발달을 위한 조건: 수평적 관계


   그러나 모든 유형의 교류가 사회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A와 B의 관계가 수평적이기보다는 수직적이어서, B가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A는 주변에 친구가 많지만, B는 함께 놀 다른 친구가 없는 경우, 또는 극단적이지만 A가 B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처럼 A와 B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면 A와 B 간의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어른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B의 의사와 무관하게 A에게 유리한 선택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수직적 관계에서는 A와 B 누구도 건전하고 호혜적인 갈등 조율의 과정을 경험하기 어렵다.


   어쩌면 최근 적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또래 관계를 손익의 구도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 즉 관계의 수직성에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형편, 학력, 외모, 신체 능력 등 제한된 기준에 근거한 상대적 비교에 민감하며, 아이들조차도 이와 같은 기준에 따라 자신과 친구들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와 같은 수직적 관계의 양상을 가정하고 있을 때, 특히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의 부모는 자녀의 손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수직적 관계를 가정하는 자녀들은 스스로 또래와의 갈등 해소를 시도하기보다는 교사나 부모에게 잘잘못에 대한 판단과 중재를 의존하기 마련이다.


   이에 부모들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녀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갈등 관계에 있는 아이의 부모들 간의 이와 같은 2차 갈등이 부모들 간의 수직적 위치(예,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유·불리를 달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사회적 관계를 수직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강화되며, 그 결과 아이들은 동등함을 전제로 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견 조율의 기회, 사회성 발달의 기회를 잃게 된다. 



   부모의 역할


   자녀의 사회성 발달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무엇보다 자신이 평소에 자녀를 자신과 다른 욕구와 가치를 지닌 한 명의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하는지, 자녀의 현재와 무관하게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는지, 그리고 자녀에게 따뜻하고 다정한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녀에 대한 태도와 자녀와의 상호작용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자녀가 독립적·주체적으로 타인과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한 심리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다음으로 부모가 할 일은 자녀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녀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어울림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수평적 관계는 아이들이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내 아이의 부모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부모들에게는 다음 세대가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의 수직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더욱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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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경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석사 학위 취득하였으며, University of Florida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생의 인지적 및 비인지적 역량으로써 사고, 정서, 가치에 관해 연구해 왔으며, 최근 디지털 전환이 요구하는 학생 역량과 이를 위한 학교교육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필자
권희경
소속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발행일
2024.02.21